[뉴스에듀=온라인뉴스팀] 대도시 서울은 첨단과 유행을 추구하는 도시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이런 서울에도 ‘오랜된 것’과 ‘꾸준함’의 미학은 여전히 남아 있다. 손님의 대다수가 수십년 째 단골고객인 이발소가 있는가 하면, 20여 년 동안 변함 없는 수타 짜장 맛을 고집하고 있는 중국집도 있다.  

서울시는 대기업의 공격적 시장진출과 대규모 점포의 상권 확장 등으로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는 전통점포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서울의 고유한 멋과 매력을 담은 전통가게 13곳을 발굴했다.

서울 쌍문동에 위치한 ‘효동각’ 역시 서울에서만 17년째 가게를 운영중인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가게이다. 현재 위치에서는 3년 동안만 장사를 했지만, 서울 안에서는 17년 간 꾸준히 가게를 운영해오면서 단돈 4,500원으로 수타 짜장면을 올곧이 지켜내고 있다는 점이 이 가게의 특징이다. 첫 출발 당시 가격은 2,500원이었다.

▲ 효동각에서 팔고 있는 짜장면. 전통의 맛과 향을 그대로 느껴진다.

▲ 효동각의 하규종 사장과 그의 부인은 ‘손님을 졸병으로 보자’라는 남다른 철학을 갖고 있다. 손님 입맛에 끌려가는 것이 아닌 옛날 짜장면집의 고유한 특색을 간직하자는 의미이다.

효동각 대표 허규종(52)씨는 “처음 답십리에서 자장면 팔 때에는 사람들 정이 남달랐던 것 같다. 짜장면 한 그릇을 갖다줘도 고맙다고 팁까지 주는 사람도 많았으니까.”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지금이야 뭐 카드가 보편화됐으니 그런 정이 사라진 건 많이 아쉽지 뭐...”라며 입맛을 다셨다.

20년 간 수타를 고집해온 베테랑 허 사장은 역시 남다른 장사 철학을 갖고 있었다. 이른바 ‘손님을 왕이 아닌 졸병으로 보자’는 것. 그는 “손님이 왕이라는 생각으로 장사를 하면, 어느새 가게가 손님 입맛에게 끌려가게 되더라”며 “최근에는 특히 고급 중국집이 많아 지면서 옛날 짜장면집의 고유한 특색을 잃어가는 것 같아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최근 퓨전 음식점이 많아지면서 그곳에서 먹어본 메뉴를 우리에게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오징어 탕수육’ 같은 처음 들어보는 메뉴가 다반사죠. 그 때마다 짜장면과 짬뽕을 최고로 여겼던 옛날 사람들의 단순함이 그리울 때가 있지. 사실 옛날 짜장은 아직도 맛에서 밀리지 않거든.”

그러면서 그는 “채소도 큼지막하게 넣고 고기도 더 큼지막하게 썰어 넣고, 감자까지 집어넣는 옛날 짜장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재료값이 비싸져서 섣불리 개시를 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 ‘꽃동네 이발관’ 사장 김강덕 씨는 25년째 꿋꿋이 한 동네에서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불거진 대기업의 서민상권 확장과 관련해 전통가게 주인인 허 씨의 생각은 어떨까. 그는 “면을 만드는 밀가루 등 많은 식품 원자재도 대기업이 진출하면서 원자재들의 가격이 많이 오른 편”이라며 “10여 년 전에는 재래시장에서 시장표 밀가루를 사도 질이 좋고 가격도 싼 편이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이어 “사실 대기업이 살아야 중소기업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 “대기업 밑에 있는 하청업체까지 대기업에서 관리를 하다보니 서민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동네에 위치한 ‘꽃동네 이발관’ 역시 25년이 동안 한 업종으로 터를 지키고 있는 가게이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단골’이라는 이 이용원의 사장 김강덕(53)씨는 “손님들이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기 때문에 장비도 최신 장비 대신 과거의 추억을 느낄 수 있도록 일부러 옛날 기기와 장비를 쓰고 있다.”며 손 때 묻은 장비들을 일일이 보여줬다.

▲ 단골 손님 이명호 씨의 머리를 직접 손질해주고 있는 김강덕 씨, 손님 이명호 씨는 “머리 손질 솜씨 못지않게 김 씨의 푸근한 인심이 이곳을 찾게 하는 큰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손수 면도를 할 수 있는 면도날부터 약간은 낡아 보이는 미용 의자까지 사용기간이 10년은 훌쩍 넘었을 법한 낡은 기기들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흠뻑 묻어났다. 10년 넘게 꽃동네 이발관을 찾는다는 단골 손님 이명호(64)씨는 “착한 심성을 갖고 있는 사장님과 그에 걸맞는 이용 솜씨가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이 이발소를 찾게 만드는 이유”라고 말했다.

“다른 미용실에 가면 마음에 안들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에요. 그래서 항상 믿을 수 있는 이 곳만 찾게 되네요. 머리 깎고 면도도 하고 이발소 아저씨랑 마음 통하며 얘기도 나눌 수 있으니 이발을 하러오는 게 아니라 집 근처에 마실 나오는 기분이죠(웃음)”

15년째 단골로 이곳을 애용하고 있다는 박문준(68)씨 역시 사장님의 푸근한 인심과 익숙함에 줄곧 한 곳만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15년 전부터 이용해왔기 때문에 제 머리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안다. 이제 아마 눈 감고도 자를 것”이라며 “이발 뒤 받는 면도 서비스 역시 일반 미용실에서 받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서비스”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 서울시의 지원 아래 말끔한 간판을 얻게 된 꽃동네 이발관, 이용사로 일하고 있는 김강덕 씨는 “20년만에 간판을 바꿔 달고 새로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며 “가게를 운영하는 데에 깔끔한 간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내부의 낡은 기구들과는 달리 세련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의 깔끔한 간판 또한 인상적이었다. 김 씨는 “서울시가 지원한 간판 사업에 참여했다.”며 “미관상으로도 좋고 이용원의 전체적인 분위기에도 마음에 들어 간판을 교체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씨는 서울시로부터 간판 교체 비용의 약 70% 정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서울시 창업소상공인과의 이재석 주무관은 “전통 있는 우리 가게들이 계속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 서울시 차원에서 전통 가게들을 살려보자는 취지에서 이 사업을 시작했다.”며 “전통 가게들을 지원·홍보해줌으로써 시민들도 전통 가게들을 알게 되고, 전통 가게 업주들도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15년 간 꽃동네 이발소만을 찾고 있다는 단골 손님 박문준 씨는 매번 동네에 마실 나오는 기분으로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이 주무관은 “대장간, 전파사, 이발관, 주단집 등 전통 장인의 손길이 담긴 업체와 손짜장집, 참기름집처럼 가족을 대하는 듯한 정성과 섬세한 손길, 끝없는 서비스 분위기 등은 전통가게만이 가진 장점”이라며 “이 같은 전통상업점포들이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2014년까지 총 1,000개 점포를 특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발굴된 전통상업점포에는 자영업 전문컨설턴트가 전통상업점포의 고유한 매력을 유지하면서도 시설 및 경영기법을 현대화할 수 있는 경영 컨설팅과 경영개선교육, 자금을 지원하고, 2012년도부터는 홍보 및 판로도 지원한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변한 게 마련이지만, 한 자리에서 변함 없이 세월의 흔적을 소중히 지켜나가고 있는 사람들. 이렇듯 ‘오래된 것’에 대한 가치와 이를 지켜나가는 사람들의 노력들이 존중받아야 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정책기자 변현준(대학생) hyunjun28@naver.com